전량기 | |
호수 | 30호 |
작품사이즈 | 91 x 60.5cm |
재료 | 캔버스의 아크릴 |
장르 | 동양화 |
제작년도 | 2006 |
Identity
강력한 색채 속에 대비되는 은유의 미학, 빛나는 그리움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고향
Curator's Note.
일찍이 우암 전량기의 작품은 자신의 명자(名字)와 세월, 그리움을 한껏 자아내고 있다.
언젠가 화백 조헌은 그에게 유독 그런 색채가 작품에 묻어나고 있는 까닭을 물었다.
이에 우암은 나지막히 "본디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고 답했다. 익히 알고 지내온 사이였음에도 그 대답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림의 본질에 관하여 일깨워주는 한마디였던 것이다.
우암의 그림이 새삼 달라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그때부터 였다. 심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우암의 작품은 딱히 다른 어떤 말로 형용하기도 난해했다.
그저 좋았다. 작품 특유의 강결한 색채가 더욱 농밀하게 다가왔고,
가슴 한 켠 어딘가 내재된 아득한 그리움이 뭉클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금 마음에 여운을 주는 글귀를 접하게 됐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시대의 천재라 일컬어지던 신영복 선생의 글이었다.
"그림은 우선'그림'이라는 의미에 충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과 그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부족한 식견으로 감히 신영복 선생의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것과 그분을 따라다니는 이구동성, 왈가왈부 목소리에는 함구하고 싶지만,
공감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은 아무래도 불가항력적이다.
일 평생 화가로서의 삶을 걸어온 그에게는 참으로 와닿는 말들이었고, 더불어 그 글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우암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풀 빛들, 고고하게 떠다니며 위안을 주는 구름, 적막 한가운데 놓인 고택의 여운, 행여나 들릴까 낮게 우는 새의 노랫 소리,
시간의 흐름에 매몰될 것만 같은 역사적 슬픔이 한층한층 겹겹이 쌓일수록 작품의 색채는 더욱 선명해져 간다.
그 의미에 다다를 수 있을 듯, 말듯 곳곳에 배치된 은유적 대상물들은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매우 잘 버무려진다.
대표적으로 작품에 줄곧 등장하고 있는 한국호랑이는 태고적 신화에 기반하는 자유 의지의 표상으로서 고통을 견디며
절대적 존재의 의지를 이행했던 곰보다 외려 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면을 지녔음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신화적 프레임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 틀을 깨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의 작품은 역사책 보듯 흥미진진해진다.
작가는 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랑 존재는 무엇인가? 진정 인간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의 의지를 갖고, 저 마다의 길을 걷고 있지만, 결국 우린 모두 궁극적으로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태초적인 인간다움으로 회귀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숨겨 놓은 작위적 그리움이 아니라 그리움이 발효되어 스스로 빛을 자아내는 선명한 눈부심,
우암 전량기 선생은 빛나는 그리움을 그리는 작가다.
분명한 건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노라면, 단순히 시각적 감상 만을 초월하여 그날의 소리, 그날의 내음,
청각과 후각마저 자극하는 강렬한 노스탤지어(Nostalgia)에 휩 쌓이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Identity
강력한 색채 속에 대비되는 은유의 미학, 빛나는 그리움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고향
Curator's Note.
일찍이 우암 전량기의 작품은 자신의 명자(名字)와 세월, 그리움을 한껏 자아내고 있다. 언젠가 화백 조헌은 그에게 유독 그런 색채가 작품에 묻어나고 있는 까닭을 물었다.
이에 우암은 나지막히 "본디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이라고 답했다. 익히 알고 지내온 사이였음에도 그 대답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림의 본질에 관하여 일깨워주는 한마디였던 것이다.
우암의 그림이 새삼 달라보이기 시작했던 것은 그때부터 였다. 심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우암의 작품은 딱히 다른 어떤 말로 형용하기도 난해했다. 그저 좋았다. 작품 특유의 강결한 색채가 더욱 농밀하게 다가왔고, 가슴 한 켠 어딘가 내재된 아득한 그리움이 뭉클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다시금 마음에 여운을 주는 글귀를 접하게 됐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시대의 천재라 일컬어지던 신영복 선생의 글이었다.
"그림은 우선'그림'이라는 의미에 충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림'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과 그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 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부족한 식견으로 감히 신영복 선생의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것과 그분을 따라다니는 이구동성, 왈가왈부 목소리에는 함구하고 싶지만, 공감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은 아무래도 불가항력적이다. 일 평생 화가로서의 삶을 걸어온 그에게는 참으로 와닿는 말들이었고, 더불어 그 글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우암의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풀 빛들, 고고하게 떠다니며 위안을 주는 구름, 적막 한가운데 놓인 고택의 여운, 행여나 들릴까 낮게 우는 새의 노랫 소리, 시간의 흐름에 매몰될 것만 같은 역사적 슬픔이 한층한층 겹겹이 쌓일수록 작품의 색채는 더욱 선명해져 간다. 그 의미에 다다를 수 있을 듯, 말듯 곳곳에 배치된 은유적 대상물들은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매우 잘 버무려진다.
대표적으로 작품에 줄곧 등장하고 있는 한국호랑이는 태고적 신화에 기반하는 자유 의지의 표상으로서 고통을 견디며 절대적 존재의 의지를 이행했던 곰보다 외려 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면을 지녔음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신화적 프레임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 틀을 깨는 도전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그의 작품은 역사책 보듯 흥미진진해진다.
작가는 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랑 존재는 무엇인가? 진정 인간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의 의지를 갖고, 저 마다의 길을 걷고 있지만, 결국 우린 모두 궁극적으로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가?
태초적인 인간다움으로 회귀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 무언가를 비밀스럽게 숨겨 놓은 작위적 그리움이 아니라 그리움이 발효되어 스스로 빛을 자아내는 선명한 눈부심, 우암 전량기 선생은 빛나는 그리움을 그리는 작가다.
분명한 건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노라면, 단순히 시각적 감상 만을 초월하여 그날의 소리, 그날의 내음, 청각과 후각마저 자극하는 강렬한 노스탤지어(Nostalgia)에 휩 쌓이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던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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